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문단 편집) == 평가 == 처음에는 파비우스의 전략을 이해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이 그를 '''굼뜬 사람'''(cunctator)이라며 비난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비록 단기간에 결판은 나지 않았어도 그의 전략이 결국 옳았다는 것이 입증되어 "지연자", "굼뜬 사람" 등의 비난섞인 호칭은 "지구전주의자"라는 명예로운 호칭으로 바뀌었다. 시인 엔니우스(Quintus Ennius)는 그의 용기를 찬양한 시를 썼다. >한 사람, 오직 그만이 지연 작전을 써서 >우리 [[로마 공화국|공화국]]을 부활시켰노라. >그는 자신의 명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조국의 안전만을 중히 여겼도다. >지금 그의 명성은 찬란히 빛나고 있지만,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욱 더 그의 명예는 고귀하게 되리니. >---- >엔니우스, 《연대기》[* 원문은 소실되었고, [[키케로]]의 《의무론》에만 남아있다.] 즉 진정한 용기를 지닌 정치가는 대중의 요구에 영합하지 않고, 오직 국가의 이익을 중히 여긴다는 것이다. 파비우스의 전략이 당시엔 인기가 없었지만 결과적으론 로마를 구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한니발은 파비우스가 지구전을 펼치는 동안 로마시를 공격하지 못하고, 이탈리아 남부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한니발을 제외한 카르타고의 장군들은 로마를 상대로 대부분 함량 미달의 전과밖에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로마군이라고 해도 결코 [[무적]]의 군대는 아니었고 카르타고군 역시 완전히 [[허수아비]]는 아니었다. [[베티스 고지의 전투]]를 보면 알겠지만 스페인에서 본격적으로 본국의 보급을 받아 규모가 늘어난 카르타고군을 상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다만 이 보급도 매번 연패하던 카르타고가 겨우 보낸 것이란 점을 감안해야 한다.] 한니발이 이탈리아 남부에서 발이 묶여 있는 동안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이끄는 로마군은 히스파니아와 카르타고 본토를 공격해서 제2차 포에니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조국이 위기에 봉착했을 때 멀리 내다보고 그것을 현명하게 대처한 파비우스는 위대한 정치가의 상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파비우스에 대한 칭송은 어느 정도 정치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파비우스는 [[대 카토]]를 비롯한 스키피오 반대 파벌의 정치적 원로였다. 제2차 포에니 전쟁의 영웅 스키피오를 몰아낸 대 카토 중심의 반'스키피오'파는 한니발을 패배시키고 카르타고를 멸망시키며 전쟁을 승리로 이끈 스키피오의 명성을 어느 정도 억누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이들에 의하여, 스키피오에 대한 대안으로 선택된 영웅이 파비우스이다. 결국 파비우스 칭송은 "우리는 스키피오만으로 이긴 것이 아니다."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물론 파비우스는 유능했다. 고유명사화되어 지금까지 이름이 남아있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상황상 지연전이 강요되었고 파비우스는 이를 대단히 훌륭하게 수행했다. 그의 행보가 '파비우스 전략', '파비우스의 승리'라는 명칭으로 정치적으로 띄워진 면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띄워질만한 성과를 거두었으며 타인의 입장에서 쉽게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